종교 개혁을 뒤집기 위한 로마 교회의 노력들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개혁주의자들의 성경적인 믿음에 대응하기 위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요 반응이 예수회를 통한 반개혁운동이었던 것처럼, 지금 교황 프란체스코 예수회 회원은 종교개혁을 뒤집기 위한 로마 교회의 노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노력을 막고 또한 개혁 신앙을 밀고 나가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래의 글을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회원들에게 전달해 주시고 또한 인터넷에 게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종교 개혁을 뒤집기 위한 로마 교회의 노력들

리차드 베네트   (스데반 황 역)

 

16세기에 개혁주의자들의 성경적인 믿음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대응은 예수회를 통한 반개혁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그들이  종교 개혁 이전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지녔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력을 되찾기 위한 매우 과격한 운동이었다. 예수회는 약 4백년 동안 반개혁운동을 이끈 주도 세력으로서 교황의 권위를 세우고, 성사(聖事) 제도를 회복하며, 종교 개혁의 성경적인 원칙에 의해 영향을 받은 여러 나라들에게 미신적인 신비주의를 추진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권력과 명성을 지닌 자들을 목표로 삼아 그 운동에 영입시켰고 또한 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자들의 환심을 얻는데 노력하였다. 특히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집중하였다. 

 

이러한 예수회의 활동은 1962-1965에 있었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포함되었다. 그 공의회의 주요 업적은 거짓 기독교 통합을 이루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 계획이었다. 그 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은 모든 여러 ‘기독교’ 교단들과 그들의 단체들을 로마 교황의 통치 하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로마 교회는 자신들이 유일한 기독교 교회라고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쉬지 않는 노력을 해 왔다. 로마 교회는 모든 기독교 교단들, 특히 복음주의 교회들을 “떨어져 나간 형제들”로 지정한 후 그들이 모교회인 카톨릭과 연합하기 위해 돌아올 때에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해 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로마 교회는 교황 교회가 기독교의 머리로 받아들여질 때까지 쉬지 않고 수고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 세계 연맹(LWF) 통해 종교 개혁을 뒤집기 위해 시도하다.

노련한 예수회 회원인 교황 프란체스코는 2016년에 종교 개혁을 뒤집기 위한 활동을 이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활동을 막고 또한 종교 개혁의 믿음을 확장시키기 위해 그의 활동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2016년 1월 25일 날짜의 카톨릭 뉴스 서비스는 교황 프란체스코가 2016년 10월 31일에 스웨덴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개신교 종교 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교황 프란체스코는 기독교 통합(Ecumenical) 예배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기독교 연합 추진을 위한 교황회와 루터 세계 연맹에 의해 세워진 공동 언론사는 교황 프란체스코는 런드에서 열리는 기독교 통합 기념회를 루터 세계 연맹의 회장 무니브 요우난, 연맹 총서기인 마틴 융게와 함께 인도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1]

로마 카톨릭 교회와 루터 세계 연맹의 배교는 1999년 10월 31일에 선포된 “칭의 교회에 대한 공동 성명”(아래에 올려진 글을 보라.)[2]  을 통해 확증되었다. “죄인으로서 의롭게 된 자들”이라는 제목 하에 공동으로 발표된 공식 내용은 “우리는 성령의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며 의롭게 되며 또한 참으로 새롭게 되어지는 것을 함께 고백한다”[3] 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적인 진리는 신자의 믿음은 그 어떤 실제적인 행위에 기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완전한 삶과 대속을 믿는 것이며,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만 사람이 의롭게 된다( 6:29; 2:28, 29; 2:8, 9; 2:11; 3:21-26).  “세례”의 효력으로 각 개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주장은 십자가 상에서의 주의 은혜와 주의 이루신 사역을 부인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곧 “또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1:9 ).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마틴 루터의 주된 원칙이었는데, 이 원칙을 루터 세계 연맹은 1999년에 로마 카톨릭 교회와 여러 차례의 기독교 통합 대화를 통해 철저하게 타협하여 버린 것이다. 

로마 교회는 영국 교회를 붙잡기 위해 기독교 통합 운동을 추진하다.

 

더욱이 2016년 2월 9일에 카톨릭 뉴스 서비스는 다음 내용을 게시하였다.

 “…웨스트민스터의 대주교는 헨리 8세가 살던 저택에서 저녁 예배를 집행하였다. 이 예배는 450년 만에 카톨릭 교회의 라틴 예식에 따라 궁전에서 드려진 왕궁 예배로서 첫 번째 예배이다.”[4]

 

최근의 이러한 로마교의 침입은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2010년 9월에 영국을 방문한 이래로 예상된 바였다. 그 이유는 베네딕트 16세의 방문은 “강력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있어서 믿음의 역할의 중요함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교황청과 영국 사이에 단합을 강력하게 하는 전례 없는 기회”로 불렸기 때문이다. 또한 교황은 웨스트민스터 강당(또한 의회장소)에서 영국 시민 단체에게 연설하였다.[5]

 

             헨리 8세 왕은 비록 로마 교황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분리하여 나왔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로마 카톨릭의 교훈을 한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에 의해 대표되고 있는 영국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흉내내고 있으며 기독교 통합 대담에 의해 배교의 로마 교회와 더더욱 가까이 연합하고 있다. 이는 정확하게 제 2차 바티칸 회의의 문서 32번에 언급된 교황의 목적과 부합되는 현상이다.[6]

 

, 이제 2016년에는 우리가 문서를 통해 알린 개의 보고처럼 종교 개혁을 무효화하기 위한지난 500 동안의 교황의 노력들을 실현할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 교황이 루터 세계 연맹의 회장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를 만나 기독교 통합 운동을 의도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믿음을 부인하기 위한 배교를 추진하기 위함임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종교 개혁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다시 살펴볼 이유가 있다

종교 개혁의 참된 믿음

독일의 마틴 루터, 프랑스의 존 캘빈, 르페브르, 파렐, 스위스의 쯔빙글리 등, 이 모든 사람들은 참된 개혁주의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의 종교 개혁 신앙의 근본적인 특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연합되어 사람은 성경이 언급하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 내용에 따라서 서로 성경의 진리를 가르쳤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3-24, 26).

종교 개혁은 분명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 특징은 역사 속의 여러 다른 개혁들과 종교 개혁을 구별시킨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에 하나는 지역적인 확장이다. 종교 개혁은 거의 동시에 각각 독자적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작하였다. 마틴 루터, 존 칼빈, 르페브르, 그리고 쯔빙글리는 일제히 로마교회의 예식에 대항하는 설교를 하였고,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드높였다. 비록 루터가 종교 개혁의 창시자라고 불리지만, 다른 종교개혁자들 역시 진리의 기반으로 오직 성경을 지지하며 똑 같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였다.

오직 성경: 종교 개혁의 강력한 원칙

 

이단적인 교황의 전통 가운데 끝없이 허우적거릴 것처럼 여겨지던 유럽은 종교 개혁의 빛을 보게 되면서 성경적인 기독교 믿음에 이르기 시작하였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향해 강력하게 외쳤다.

“성경과 분명한 논리에 의해 확증되지 않으면 나는 교황의 권위와 공의회의 결론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것들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며, 또한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양심에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내 믿음을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라. 아멘”.[7]

참으로, 루터는 단지 우리 주님과 그분의 사도들에 의해 확증된 기준을 발견했던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세 차례의 시험을 받으실 때  “기록되었으되”로 마귀를 대적하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과 함께 80번이나 성경을 그대로 인용하셨다. 이는 성경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 주께서 기록된 말씀의 권위를 완벽하게 수용하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말씀에서 더욱 분명하여진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시 138:2).

개혁자들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유일한 권위에 굴복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이와 같이, 그 당시 주께서 일으키신 루터와 개혁자들은 사람의 양심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묶여 있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참으로, 모든 참된 주의 제자들은 진리와 거짓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아버지의 말씀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전통에 의해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시 119:140). 그 누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참된 영적인 사랑의 표시는 성경에 자명하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렘 15:16).

            개혁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순복하는 자리에 두었다. 따라서 그들은 “거룩한 전통”이 진리를 아는데 필수라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의 그릇된 교리를 정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된 믿음이 로마 교회의 신앙 제도에 아직 여전히 남아있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는 이렇게 말한다. “거룩한 전통과 거룩한 성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교통한다.” “(거룩한) 전통은 그 전체가 그리스도 주와 성령에 의해 사도들에게 의탁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만으로 계시된 모든 진리들에 대하여 확증하지 않는다.  성경과 전통 이 둘이 받아들여져야 하고, 동등한 헌신과 존경으로 귀하게 여겨져야 한다.”(카톨릭 교회 교리, 구문 80, 81, 82).

개혁자들을 위한 진리와 길과 삶을 배우라.

종교 개혁이 있던 당시에, 진리에 대한 연구와 추구는 삶의 주요한 부분이 되었다. 종교 개혁 운동이 유럽과 영국 제도(諸島)에 걸쳐 확장되는 과정에 개혁자들 사이에서는 큰 우정과 형제 사랑이 자라났다. 서로 깨달음을 자주 나누었으며, 서로 풍성하게 접대하였다. 종교 개혁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개혁자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만남과 협조가 대단하였다는 사실이다. 종교 개혁은 대단히 신속하게 퍼져나갔다. 물론 강화와 개선과 확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내는 그렇게 방대한 규모의 놀라운 개혁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 당시 원어 성경이 존재하였고, 또한 성경을 읽기 위해 히브리어, 라틴, 헬라어를 잘 아는 교육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경은 각 나라의 통영어로 번역됨으로써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려면 학문이 요구되었다. 만일 그 당시 통영어로 사람들에게 공급될 수 있는 성경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루터들과 라티머들, 쯔빙글리들, 낙스들, 위샤트들이 종교 개혁을 성취하는데 실패하였을 것이다. 만일 라티머가 캠브리지에서 설교할 때 대륙으로 도피한 틴델이 영어로 된 수천권의 신약 성경을 영국으로 몰래 가져오지 못하였다면 모든 영국 사람들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에 영국에서의 종교 개혁은 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들이 독일, 프랑스, 그리고 여러 나라들 가운데 발생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전체주의로부터 벗어난 종교 개혁의 핵심적인 사건들은 대단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종교 개혁은 성령께서 친히 지속적으로 모든 상황을 움직이시는 역사였다. 종교 개혁은 참으로 은혜의 복음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배교의 교황 교회의 미신과 의식주의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회심하는 영광스러운 영적 각성이었다. 성경의 유일한 권위 회복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였고,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 만으로 의롭다 칭하게 되는 교리의 재발견은 모든 참된 신자들로 하여금 종교 개혁의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직접 만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도록 인도하였다.

 

종교 개혁의 유산

그렇다면 종교 개혁의 유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종교개혁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종교 개혁 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개혁일 뿐만 아니라 이전 또는 그 이후의 개혁처럼 기도에 의한 개혁이었다. 스펄전은 종교 개혁을 붙들어 준 것은 기도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루터만이 종교 개혁을 일으킨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몰래 한숨을 쉬며 절규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 하나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독일의 블랙 포리스트의 오두막에서, 스위스의 언덕에서, 스페인의 궁전에서, 영국의 종교 재판 및 감옥에서 신음하며 기도하던 수많은 주의 백성들이 있었다”.[8]

이와 같이 기도는 이 위대한 운동의 바탕이었고, 유럽 전역에서 주께 드려진 수많은 영혼들의 간절한 기도는 주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이어졌던 것이다.

            종교 개혁 이후 18세기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요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와 관련되어 첫 번째 영적 대각성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의 은혜가 부어지기 전에 우리는 그들 및 그들 동료들의  삶 가운데서 기도를 발견한다. 또한 1859년에 울스터 노던 아일랜드에서, 그리고 19세기 말에, 또한 20세기 초 웨일즈에서도 참된 개혁이 있기 전에 반드시 수많은 기도가 있었다.

결론

개혁자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만이 그분의 존재와 선함과 거룩과 의와 능력과 진리와 지혜에 있어서 영원하며 무한하며 변함이 없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주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주만이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다. 주만이 거룩한 아버지이시며, 오직 주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한다. 따라서 교황 프란체스코가 2016년 10월 31일에 스웨덴을 방문하려는 계획들과 헨리 8세의 이전 왕궁에서 저녁 예배를 집회한 웨스트민스터의 대주교는 로마 카톨릭의 배교를 보여주는 분명한 실례들이다. 2016년, 죄는 참으로 넘쳐 흐른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을 경외함, 죄에 대한 책망과 은혜의 복음이 필요하다. 이 모든 차고 넘치는 죄와 속임 가운데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며 그리스도 예수와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해답을 준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당신이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풍성한 은혜를 받음으로써 당신은 죽음의 다스림으로부터 구속 받는다. 당신은 주의 말씀을 통해 성령에 의해 날마다 거룩하여지고 또한 지속적으로 주님과 함께 친교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다스릴 것이다. 또한 주와 함께 당신은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영원토록 주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오직 주만 믿으라. 그러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안전할 것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우리가 16세기, 17세기, 18세기의 개혁자들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신자들을 위한 것이며, 주께서는 죄인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대신하여 율법을 이루시고 친히 대속하셨다. 주의 대속은 참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희생 제사는 믿는 자들의 모든 형량을 제거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대속물이 됨으로써 성경의 말씀대로 그들의 법적인 책임을 담당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주 하나님께서는 참된 신자들의 아버지가 되실 것을 약속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주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이는 가장 큰 영예이다. 하지만 배교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선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의 선물을 비방하고 조롱하며 거절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배은망덕인가? 그러므로 주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자들은 오직 주의 보혈을 통해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주어진다. 주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의 부패를 시인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게 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는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유와 영생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를 믿고 주만 의지하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Richard Bennett, http://www.bereanbeacon.org

내용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를 복사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인터넷 상에 전체를 게시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1][1] www.catholicherald.co.uk/news/2016/01/25/pope-francis-to-visit-sweden-for-reformation-commemoration/   2/23/2016

[2] www.bereanbeacon.org/new-blog/2015/10/17/the-catholic-lutheran-accord

[3] Lutheran-Catholic Accord, “The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ctober 31, 1999, Sect. 4.4

[4] www.dailymail.co.uk/news/article-3439293/Hampton-Court-Palace-chapel-holds-Catholic-service-Henry-VIII-broke-away-Rome-16th-century.html  2/23/2016

[5] http://www.zenit.org/article-28654?l=english

[6] Vatican Council II Document “Reflections and Suggestions Concerning Ecumenical Dialogue”  August. 1970

[7] http://www.christianity.com/church/church-history/timeline/1501-1600/martin-luthers-most-noble-words-11629925.html

[8] www.the-highway.com/revival-reformation_Lamb.html 2/23/2016

로마 교회가 이슬람을 증진하며 이슬람의 신앙을 받아들이다

친애하는 친구여,

교황 프란체스코는 그의 교황권의 대부분을 이슬람을 증진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회교도들의 기습에 대해 경고하기는커녕 프란체스코는 유럽과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을 향한 이슬람의 탄압에 대한 언급을 빠뜨렸습니다. 교황 프란체스코가 이슬람을 지지하는 것은 제 2 바티칸 회의의 로마 카톨릭 교훈에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 카톨릭의 급진주의는 중대합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아래의 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중하게 이 글을 읽고 당신의 가족이나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사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로마 교회가 이슬람을 증진하며 이슬람의 신앙을 받아들이다

리차드 베네트

수많은 이슬람 이주민들이 중동으로부터 유럽으로 계속 몰려들자 서방 사람들 사이에 큰 우려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끔직한 배경 가운데 교황 프란체스코는 계속 이슬람을 지지하고 있다. 프란체스코는 세계적으로 이주하는 회교도들의 기습적인 공격을 직면할 위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경고하기는커녕 중동 및 아프리카의 크리스찬들을 향한 이슬람의 박해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물론 유럽 사람들에 대한 박해에 대해서도 회피하였다. 사실, 프란체스코가 이슬람을 지지하는 것은  제 2 바티칸 회의의 로마 카톨릭 교훈을 구체적으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

 

로마 교회는 지속적으로 회교도들이 대거 유럽 심지어 미국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지지하여왔다. 그러한 이주는 이미 발생한 여러 테러 공격의 기본 요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5 11 13 금요일 파리에서 대학살이 있었는데 그때 적어도 128명이 살해되었고(http://www.cnn.com/2015/11/13/world/paris-shooting/ 12/15/2015), 이 학살에 대해서 ISIS (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는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인정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kZPZTYPpaiUhttps://www.youtube.com/watch?v=kZPZTYPpaiU). 파리 공격 및 미국의 샌 버너디노 공격과 같은 이슬람의 테러 사건들은 사악한 전체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이슬람은 그 나름대로의 원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사고에 기초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전체주의적인 뿌리는 꾸란에 있다. 분명한 것은 교황과 그의 고문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전적인 이슬람 극단주의의 언급에 따르면 현재 회교도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는 현상은 적어도 2011년 부터는 “클라리온 프로젝트” 계획에 따른 것이다.

“IS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만일 ISIS가 군사 수단으로 서방을 패배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하드의 전사들로 서방을 들끓게 할 것이 분명하고 자명하다. … 현재의 고충은 의심할 여지없이 알바그다디가 제대로 이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IS는 지난 15개월 정도 기간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광대한 지역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승리마저 현재 우리가 행하는 일들에 비교하면 사소한 일이 되고 있다. … 그는 (알바그다디) 그의 손을 뻗쳐 인류의 왕관 보석을 움켜잡았다. 즉, 유럽 문명을 사로잡았다. 유럽 해변에 도착한 시리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IS 칼리프의 여러 다른 지역으로부터 건너온 수십만의 이주민들과 함께 수많은 IS 지하드 전사들이 섞여 있다. …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맨발로 걸어서 유럽으로 향하는 행진 역시 수백만을 넘어선다. … 알바그다디는 부요한 아랍 국가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로부터 받고 있다. … 유럽의 지도자들은 말만 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의 국가들은 점차적으로 이주민들과 지하드 전사들로 가득차고 있다. 이는 정확하게 현대의 칼리프가 계획한 바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www.clarionproject.org/blog/europe/al-baghdadis-trojan-horse-arrives-europe12/21/15)    

2015년 가을 사건들

3백만 또는 3백 50만의 회교도들이 있는 독일에서 로마 추기경은 이슬람의 꾸란은 유럽과 근동의 역사적인 유산이라고 언급하였다.

“추기경은 마인츠(서독 서부)의 추기경이며 주교였는데 그는 그 대학의 행사 센터에서 250명의 청중 앞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제 2 바티칸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강조하였다. 그후 추기경 레에만(Lehmann)은 꾸란 연구소는 꾸란을 후기 고대의 문서로 읽는 방법들을 보여준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결과적으로 꾸란은 기독교와 유대교와 비교할 때 전혀 생소하지 않고 친근하다. 꾸란은 유럽과 근동의 역사적인 유산이다’라고 말하였다.”(http://www.ruhrnachrichten.de/staedte/bochum/Bischof-in-Bochum-Kardinal-Lehmann-will-interreligioese-Gespraeche-mit-dem-Islam-foerdern;art932,2189134 Translated from the original German 12/15/2015.

이러한 끔찍한 타협들이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다. 추기경 자신도 잘 알듯이 꾸란은 결코 “유럽의 역사적인 유산”이 아니다. 그의 언급은 단지 전 세계적으로 로마 카톨릭의 영향력을 강하게 하려는 또 다른 로마 카톨릭의 의도일 뿐이다.  

또 다른 책략은 합법적인 이주 및 불법 이민을 지지하는 것으로서 이는 오랜 기간 동안 교황청의 정책이었다. 따라서 2015년 9월 16일, 교황 프란체스코는 필라델피아의 독립 기념관에서 스페인 언어로 합법 이주 및 불법 이민에 대해 연설하였다.

“필라델피아를 설립한 퀘이커 교도들은 각 개인을 존중하고 또한 형제 사랑으로 연합된 공동체를 세우려는 이상을 지닌 심오한 선교 사명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종교의 자유와 허용이 가능한 안식처를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 특히 연약하고 취약한 자들을 존중하는 형제애는 미국 정신의 근본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http://abcnews.go.com/US/pope-francis-philadelphia-founded-haven-religious-freedomtolerance/story?id=34064928)

결과적으로 교황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교황과 로마 카톨릭은 이슬람 사람들이 서방 국가 안으로 합법적이든 또는 불법 이민이든 난민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마찬가지 내용이 로마 카톨릭 웹 사이트에 실려 있다.

“4백만이 되는 시리아 난민들이 내전 및 국경 내에서의 ISIS 의 테러로 인하여 그들의 가정과 국가를 떠났다. … 이들 난민들의 대다수가 인근 국가들로 피하였으나 수많은 난민들은 유럽으로 망명을 청하였다. 교황 프란체스코와 카톨릭 주교들은 미국 및 국제 기구들에게 부탁하여 망명을 청하는 자들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였다.”(www.societyofmaryusa.org/JPIC/JPIC-Action-HumanitarianCrisisInSyria110515.html  12/15/2015)

또 다른 로마 카톨릭 웹 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교황 프란체스코와 카톨릭 주교들은 미국 정부 및 국제 공동체를 향해, 폭력을 피하여 도망친 시리아 난민들과 박애주의 노력의 전선에 서 있는 국가들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www.usccb.org/about/migration-policy/syrian-refugee-crisis.cfmhttp://www.usccb.org/about/migration-policy/syrian-refugee-crisis.cfm  12/15/2015)

하지만, 가장 부요한 다섯 회교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테러의 위험에 자신들을 노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비록 기름으로 부요한 국가들이 지원금을 건네기는 할지라도, 영국은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연방, 그리고 카타르가 지원한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지원하였다(www.breitbart.com/london/2015/09/05/gulf-states-refuse-to-take-a-single-syrian-refugee-say-doing-so-exposes-them-to-risk-of-terrorism/ ). 오히려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 그리고 가장 부요한 다른 아랍 국가들 셋은  ISIS 지도자 알바그다디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로마 카톨릭 교회는 갈등 가운데 있는 양측을 지원하면서 왜 양측을 다 지원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거절하고 있다. 물론 이는 갈등이 해결되는 때에 로마 카톨릭은 우위를 지킬 속셈이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가 그들 학교에서 이슬람을 장려하다.

영국과 웨일스의 카톨릭 주교들은 모든 로마 카톨릭 학교 내에 회교 기도실을 둘 것을 바라고 있다. 이들 주교들은 또한 모든 로마 카톨릭 학교 내에 회교도의 기도를 위한 정결 예식을 위한 설비 시설들을 바라고 있다. 회교도들은 카톨릭 학교들이 그러한 방대한 정결 예식을 위한 설비 시설을 갖추려면 비데와 족탕기, 그리고 호스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교들의 이러한 추천은 버밍햄의 대주교 빈센트 니콜스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카톨릭 대주교 추기경 코맥 머피 오코너를 이을 후보자이다.

카톨릭 학교가 회교 기도를 위해 “거룩한 장소”를 제시하다.

(Details on: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1091218/Muslim-prayer-rooms-opened-Catholic-schools-say-church-leaders.html#ixzz3ubVKMF6E )

사람들은 카톨릭 종교 학교가 이슬람 학생들에게 이슬람 종교의 “거룩한 공간들”을 마련해 준다고 하면 아연실색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설이 영국과 웨일스 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로마 카톨릭 학교 내에 허락되었다. 예를 들어, 미시간 브룸필드의 “브라더 라이스 고등학교”의 교장 존 버니는 ‘회교도들 및 비기독교 학생들을 허락하기 위해 학교 내에 비기독교적인 기도실’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버니는 그 기도실이 “우리의 믿음과 정체성을 타협하는 것인지, 또는 우리가 지닌 존중과 어울리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도록 촉구하였다.(http://www.truthrevolt.org/news/catholic-school-offers-sacred-place-muslim-prayer)

이슬람을 도우려는 모든 이주 및 로마 카톨릭 학교의 도움은 교황 프란체스코의 관할 하에서 발생하고 있다. 프란체스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것은, 첫째, 그는 회교도의 공격으로부터 신실한 카톨릭 신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만일 회교도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카톨릭 신자들과 서방 사람들은 이슬람 법 아래 살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둘째, 서방의 최고 종교 지도자로서 교황은 회교 종교 지도자들이 계속 그들의 폭력적인 공격을 지속하도록 격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회교도의 공격은 주로 서방이 되고 있으며, 특별히 기독교가 되고 있고, 또한 일반적으로는 세계 전체가 된다. 셋째, 그는 카톨릭 제국을 세우려는 그의 목적을 위해 이슬람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그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황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슬람의 경전은 기독교의 교훈을 어느 정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마리아를 심오할 정도로 존경합니다. 또한 젊은이나 노인, 남녀 할 것없이 모든 회교도들은 매일의 기도를 위해 시간을 내고 또한 종교 봉사를 위해 신실하게 참여합니다. 이를 보면 대단합니다. 또한 그들 대다수가 그들의 삶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을 위하고 있다고 깊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윤리적인 삶에 헌신함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필요와 또한 궁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필요를 인정합니다.”(http://galliawatch.blogspot.com/2013/12/pope-francis-on-islam.html   2/20/14

교황의 언급은 간교한 입바름인데, 그 이유는 그의 발언은 “구원의 계획”에 회교도들이 포함된다는 로마 교회의 공식 선언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와 회교도의 관계: 구원의 계획은 또한 창조주를 인정하는 자들을 포함하는데, 그들 중에 첫째로 회교도들이 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하며 우리와 함께 그들은 마지막 날에 인류를 심판하실 한분,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숭배한다.”(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Para. 841)

프란체스코는 이슬람의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즉, 이슬람과 그 백성들을 받아들인 것은 로마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 프란체스코인 것이다. 로마 교회와 이슬람의 알라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일치한다는 주장은 성경을 믿는 참 신자들이 볼 때 성경의 믿음과 대치되는 주장이다. 그 어떤 이상한 신을 숭배하지 말라는 성경의 명령은 이슬람과 그 교도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붙들고 있다고 인정해 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깨어져 버렸다. 

이슬람은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의 주의 희생을 부인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 때문에 우리는 이슬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분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그 한분 하나님의 신성 안에는 세 위격이 존재한다. 이슬람은 이러한 삼위일체 개념을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거절한다. 꾸란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틀림없이 그들은 알라는 분명히 셋 중에 세번째 위격이며, 한분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말한 것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불신하는 그들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징벌을 내려야 한다.”(수라 5:73) (All quotes from the Koran are from this site: http://www.hti.umich.edu/k/koran/ )  

성경은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은 신자들을 대신한 것이라고 선포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이슬람은 온 힘을 다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인한다. 이에 꾸란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들은 말하길, ‘틀림없이 우리가 알라의 사도이며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 메시아를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죽이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처형하지도 않았다. 이는 단지 그들에게 (예수처럼) 그렇게 보인 것이며, 그 안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할 뿐이었다. 그들은 이와 관련해서 아는 바가 없었고, 따라서 그 추측을 따랐을 뿐이다. 그들이 그를 죽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수라 4:157).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고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라고 선포한다. 하지만 꾸란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는 단지 알라의 사도로 여겨질 정도로 그의 품위가 추락한다. 꾸란은 이렇게 말한다. “오, 그 책을 추종하는 자들이여! 너희의 종교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말라. 알라에 대항하여 거짓을 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 마리아의 아들 예수 메시아는 단지 알라의 사도일 뿐이다”(수라 4:171).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고 하셨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이라고 하셨으며,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종교는 진리일 수 없다. 교황 프란체스코와 그의 로마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깎아내리는 꾸란의 가르침을 암암리에 받아들인 사실은 가증한 것이다.

복음과 꾸란의 종교 철학

성경 안에서 사도 요한은 복음을 선포한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성경의 하나님의 모든 목적은 요한의 서신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

복음의 진리는 싸움과 전쟁, 그리고 절단과 십자가 처형과 살해를 사용한 형벌을 명한 이슬람의 신과 전혀 다르다. 다음 내용은 꾸란이 요구하는 알라를 위한 싸움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그들을 발견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이 너희를 쫓아낸 그곳에서 그들을 쫓아내며, 죽음보다 더 엄중한 처형을 가하고, 그들은 거룩한 모스코에서 너희와 싸우지 않는 한, 그들과 거룩한 모스코에서 싸우지는 말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싸우면 그들을 죽이라. 이는 불신자들이 받아야 할 보상이다”(수라 2:191).

“알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은 저 세상의 삶을 위해 이 세상의 삶을 희생하는 자들이다. 알라의 방법으로 싸우는 자들마다 죽든지 또는 승리하든지 할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위대한 상을 내릴 것이다”(수라 4:74).

하지만 우리 주님의 명령은 알라의 명령과 비교할 때 마치 어둠과 빛처럼 다르다. 그 이유는 주께서는 참으로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5-36)고 하셨기 때문이다. 수많은 회교도들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만행을 저지른 후에 애석해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만행은 이슬람의 교훈에 의해 장려되고 있고 또한 그들 안에서 의롭게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이슬람의 가장 온건한 형태라도 성경의 진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2013년 3월에 교황 프란체스코의 첫번째 외교 정책에 대한 연설을 들어보면 회교와 카톨릭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180 개국의 외교관들 앞에서 그는 민족들 간의 평화와 다리 놓기 사역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회교도들과 카톨릭 신도들은 더욱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연설 이후 긍정적인 충격의 여파가 회교도와 카톨릭 단체들 간에 남게 되었고, 지구 상의 회교 학자들과 종교 기관들은 교황 프란체스코의 당선을 환영하였다(http://craigconsidinetcd.com/2014/01/24/pope-francis-christians-must-build-bridges-of-dialogue/). 이렇게 하여 로마 카톨릭 신도들은 회교도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이 된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회교도와 카톨릭의 저의는 그들 나름대로 완벽하게 다스릴 이 땅의 제국을 세우는 것이 중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누구신지, 성경의 하나님께서 주님 자신의 경륜에 따라 모든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여왔다(참조, 엡 1:11). 

결론

이슬람을 권장하는 교황 프란체스코와 로마 교회의 정책은 기정 사실이다. 프란체스코는 전 세계를 향한 회교도들의 맹공격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대신에 유럽, 중동, 아프라카 사람들을 박해하는 이슬람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의 극단주의는 중대하다.

성경과 역사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연구로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욥 11:7-8)고 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와 풍성함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참조, 롬 11:33; 사 40:28; 전 3:11).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신이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어떻게 행하시는지 알려주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진리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이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에 물든 피조물이 되어 우리의 거룩하신 창조주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과 결코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한가지의 불순종만으로도 죽음에 처하게 됨을 분명하게 한다. 죽음이란 분리를 뜻한다. 인류는 영적으로 죽어서 생명의 근원이신 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주 하나님은 완전하게 순결하며 완전하게 거룩하시다. 우리는 죄많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한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지닐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 의로운 자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직면하고 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죄인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 아무리 많은 기도와 금식과 선행도 우리에게 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영적인 회복의 해답을 얻는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엡 1:4, 6) 우리를 받아들이신다. 영원 전부터 주 하나님께서 지니신 경륜과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은혜가 지닌 가장 적당하고 참된 의미는 분명히 거저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말한다. 죄 및 거짓 종교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에 의해 무너질 것이다. 이에 성경은 “은혜도 또한 왕노릇 한다”(롬 5:21)고 말한다. 은혜의 풍성함은 모든 죄악을 훨씬 더 초과하여 흘러넘친다. 믿는 신자가 완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그의 유일한 보증인으로 영접하면 그는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만 아니라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될 것이다(참조, 롬 5:17).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풍성한 은혜를 받은 자들마다 사망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만 아니라 주와 함께 살며 다스리게 된다. 그들은 날마다 주의 말씀을 통해 성령에 의해 거룩하여지며 계속적으로 주와 동행하게 된다. 그들은 주와 함께 영원히 살며 왕노릇할 것이며 영원한 나라에서 살 것이다.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주권적인 자유와 능력과 풍성함으로 다스린다!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72:19).   

 

 

리차드 베네트

베뢰아 사역

웹사이트: http://www.bereanbeacon.org

이메일 주소: richardmbennett@yahoo.com

 

내용을 바꾸지 않고 전체를 복사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내용 전체를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하는 것을 또한 허용합니다.

 

번역: 스데반

교황 프란체스코와 로마 교회를 거절하라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당신이 이곳에 실린 글의 사실들을 연구해본다면 당신은 교황 프란체스코와 로마 교회를 결코 인정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카톨릭이 기가 막힐 정도로 자신들에 대해 간교하게 제시하더라도 만일 누구든지 로마 교회를 참 교회로 인정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로마 교회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172년 아일랜드에서는 전국의 기독교 목사들이 마침내 로마 카톨릭을 받아들였는데 이로 인하여 그 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된 기독교 믿음을 잃게 되었습니다. 1172년에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영국 왕 헨리 2세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기독교 목사들에게 로마 카톨릭교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이에 목사들과 백성들은 차라리 순교하기보다 로마 교회를 받아들였습니다. 만일 목사들과 백성들이 은혜의 복음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희생하였다면 얼마나 사정이 달라졌을까요! 비슷하게, 1560년대에 예수회 조직원들이 폴란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폴란드 전역에 학교와 대학의 연락망을 구성한 후 카톨릭교가 참 교회라는 식으로 간교하게 가르쳤습니다. 목사들과 지도자들과 그곳 백성들은 로마 카톨릭을 인정하였고 이로 인해 슬프게도 종교 개혁에 의해 이루어진 일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예수회는 또다른 간교한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즉, 교황 프란체스코는 전 세계의 국가들에게 카톨릭을 받아들일 것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과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의 교회가 은근히 기어들어오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맞서야 합니다.    

 

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또한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리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의 몸된 교회의 머리되심을 나타내시길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께서 진리의 기록된 말씀과 은혜의 복음에 따라 그분의 교회를 다스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의 진리와 은혜 가운데 거하기를 기원합니다.

리차드 베네트  

 

교황 프란체스코와 로마 교회를 거절하라

 

리차드 베네트

 

<뉴욕 타임스>는 교황 프란체스코가 2015년 가을에 미국을 방문한 동안 그를 향한 열풍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도하였다.  

“수요일에 찬양 및 나팔 소리와 함께 환영을 받으며 미국에 들어온 교황 프란체스코는 기후 변화, 이민, 빈곤 등, 목회적인 관건에서부터 정치적인 관건까지 아우르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고대 교회의 화려함과 현대 록 스타 투어의 열기가 함께 하던 날에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미국 시민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쟁점이 되는 몇가지 관건들을 다루기 시작하였다.” (www.nytimes.com/2015/09/24/us/politics/pope-francis-obama-white-house.html)

 

그 어떤 고상한 논쟁도 교황의 판단의 통찰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어 보였고, 그 어떤 천박한 중생도 그의 자비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 하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조용히 지휘하듯이 군중들은 뭔가에 홀려 로마 교황에게 경의와 갈채를 보내었다. 이 세상이 그의 능력과 정책과 장엄함에 크게 감동하면서 그를 따르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조직에 대해 바른 진실을 이해하는 자는 거의 없다. 또한 교황 프란체스코가 실제로 말한 내용들을 성경적으로 분석해 보려는 수고를 하는 자도 거의 없다. 예를 들어, 교황이 뉴욕의 성 패트리크 성당에서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자. 프란체스코는 2015년 9월 24일에 이슬람의 메카 순례 기간 동안에 죽음을 당한 수백명의 무슬림 교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나는 나의 무슬림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두 가지 감정을 느낍니다. … 비극을 당한 그들을 향해 애착을 느낍니다. 그들이 메카 순례 기간에 겪은 비극. … 나는 이 순간에 내 기도를 확신합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와 내 마음을 함께 합니다. 전능하시며 무한히 자비하신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http://abcnews.go.com/US/pope-francis-offers-prayers-muslim-pilgrims-died-hajj/story?id=34022523

그의 이러한 감정은 바티칸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일치한다. 로마 교회는 구원의 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는 만큼 이슬람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였으며, 그들 모두가 같은 신을 예배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구원의 계획은 또한 창조주를 인정하는 자들을 포함한다. 그러한 자들 중에는 가장 먼저 이슬람 교도들이 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하며 우리와 함께 그들 역시 자비로우시며 마지막 날에 인류를 심판하실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Para. 841)

이슬람의 “알라”를 믿는 믿음에 연합을 표현한 교황 프란체스코의 언급은 참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고 하셨고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고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란체스코의 마법이 아무리 강력해도 사제의 사악함과 교리적인 능욕을 감출 수 없다.

분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로마 교회의 사악함.

2003년에 온 세상에 노출된 사실은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카나다에서 호주, 남 아프리카에서 홍콩, 아일랜드로부터 교황 요한 바울 2세의 고국인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온 유럽과 세상에 사제의 성추행 사건들 및 그 일들을 감춘 사실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B. Whitmore and C. Sennott, Boston Globe Staff, www.boston.com/globe/spotlight/abuse/print3/121402_failings.htm) “이는 한 두 사람 또는 어떤 나라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카톨릭 기관에 대한 문제이다”( Ibid., “Colm O'Gorman, director of One In Four, a United Kingdom- and Ireland-based organization that assists sexual abuse victims). 계속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은 카톨릭이 배신과 추행과 거짓말의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카톨릭 사제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추행 사건들은 최근에 발생한 2015년 8월 5일을 포함하여 계속 알려져 왔다.

“고소 기한의 마감 날자인 월요일이 지나자, 트윈 시티의 주교들의 파산 사건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마감 날까지 600개 이상의 고소가 들어왔는데 그중 407 개는 사제들의 성추행과 관련되어 있다.”( http://www.mprnews.org/story/2015/08/05/archdiocese-bankruptcy8/28/2015)      

2015일 7월 15일 날자의 <뉴욕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미네소타 주 및 온 세상에서의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이 각 기사의 헤드라인을 차지하여왔지만, 최근 대주교 존 니엔스테트 및 보조 주교, 리 피세의 사임은 중재하지 않았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징계를 더욱 가속시켰다”(http://www.nytimes.com/2015/06/15/us/archbishop-nienstedt-and-aide-resign-in-minnesota-over-sex-abuse-scandal.html?  8/29/15)

사제의 독신을 강행하는 로마 카톨릭의 교회법이 카톨릭 사제들 가운데 드러나는 부패와 방탕의 뿌리가 되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사제들도 다름아닌 인간의 정욕을 지닌 사람일 뿐이다. 그들에게 독신을 강요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자녀들을 갖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기 때문에 가증하다. 따라서 예상되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독신법은 사제들로 하여금 불법의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부패한 사제들은 음행 및 동성 연애의 행위로 여성들과 소년들, 소녀들을 더럽힌다. 최초로 사제들의 결혼을 금하는 법을 만든 사람은 교황 그레고리 7세이다. 이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며 카톨릭 교도들도 용납한다. 따라서 카톨릭 웹사이트인  uscatholic.org는 이렇게 말한다. “1075년에 교황 그레고리 7세는 결혼한 사제들이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력적인 법령을 반포하였고, 1123년에는 제 1차 레터란 공의회에서 독신제도가 정식으로 채택되었다.”(www.uscatholic.org/glad-you-asked/2009/08/why-are-priests-celibate

교황 프란체스코는 로마 교회의 전통을 깨뜨리는 교황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만일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을 참으로 배려한다면, 또한 그들의 삶을 잔인하게 찢어놓는 교황 법의 재앙들을 고려한다면, 그는 신속하게 악한 규례들을 폐지해야 할 것이다. 그가 곧바로 그렇게 할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한다. 하지만 그의 전임자들이 얼토당토 않은 규칙을  1500년 동안 강요한 이후에 교황 프란체스코가 그 규칙을 폐지한다면, 우리는 그의 주된 이유가 로마 사제들에 의해 저질러진 성추행의 희생자들에 대한 염려보다는 천문학적인 법적 소송 비용의 부담 때문일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가디언> 과 같은 뉴스 신문 잡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수십년 동안 카톨릭 교회를 흔들어 놓았던 성추행 위기를 미국의 주교들이 잘 대처한 것에 대해 환영하며 그들이 대대적인 ‘용기’를 보여줌으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권위와 신용을 다시 얻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 미국의 카톨릭 주교 모임에서 지난 해에 발표된 보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교구는 법적인 합의를 위해 17억 달러를 지출했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법무 관련 수수료로 3억 7천 9백만 달러가 지출되었다.”(The Guardian report 23 September 2015, “Pope Francis: U.S. Bishops Show ‘Courage’ Over Catholic Church Sex Scandals Abuse Crisis.”)    

카톨릭 교회는 기업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제적인 손실을 오래 동안 감당하면서 존립할 수는 없다. 카톨릭 교회는 거짓과 부패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속한 10억 이상의 교도들 위에서 권세와 힘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어쩌면 교황 프란체스코는 사제의 결혼을 금하는 법을 철폐할지도 모르겠다.

성추행보다 더 악한 것: 성례에 의해 영생을 얻는다는 로마 카톨릭 교리

2015년 5월 3일, 교황 프란체스코는 그의 전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영생을 얻고 그리스도와 교통하려면 성례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를 통해 가지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그분과 연합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에 의해 접붙임을 받은 후, 우리는 주께로부터 거저 새생명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생명이 넘치는 교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에 계속 신실해야 하고 기도를 통해 주와 동행하는 가운데 자라나야 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복음을 읽고 성례에 참석해야 하고, 특히 성체 성사와 고해 성사에 참여해야 합니다.”(www.missionsandiego.org/pope-francis-bear-the-fruits-of-membership-in-christ-and-the-church-regina-caeli-messsage-may-3-2015

이 내용은 교황 로마교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서 실제적인 예식이 은혜의 효력적인 수단인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 교회는 “성례는 구원을 위해 필요하고 성례는 성결케 하는 은혜를 자동으로 부여한다고 주장한다”(“This is the meaning of the Church's affirmation that the sacraments act ex opere operato (literally: “by the very fact of the action's being performed.”  Catechism, Para. 1128). 따라서 공식적인 교회 교리는 다음과 같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을 위한 구원을 위해 새 언약의 성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례적인 은혜’는 성령의 은혜로서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각 성례에 따라  주어진다.”( Catechism, Para. 1129)

하지만 성경을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실행을 통해 되어지지, 결코 의식을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 단호하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2장 8-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에베소서 2장 7절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의 풍성한 은혜를 보여주시는, 우리를 향한 주의 다정함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즉, 하나님만이 구원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지닌 의미이며, 따라서 구원은 로마 시스템의 성례를 통해 되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바티칸 뉴스 : 교황 프란체스코와 낙태의 죄.

바티칸 뉴스 매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도하였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특별하게 그의 관심을 낙태를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돌리면서 ‘고통스럽고 힘든 결정의 상처’를 지닌 채 회개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희년을 위해 모든 사제들에게 낙태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으며 따라서 낙태를 하였지만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죄 사함을 구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www.news.va/en/news/pope-says-holy-year-indulgences-are-an-experience9/1/2015)

그의 선포와 글은 로마 교회의 법과 일치한다. 즉, 카톨릭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함으로서 죄사함을 얻는다. 그들의 법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회와 화목하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양심을 철저하게 점검한 후에 사제에게 숨겨진 엄중한 죄악들을 고백해야 한다.”(Catechism, Para. 1493)

사제의 귀에 고백하는 이러한 제도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의식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회는 교회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와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이 사실은 바티칸이 친히 선포한 내용에 의해 확증된다.

“아무리 심각한 죄라 하더라도 교회가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없다. 만일 회개가 정직하다면 아무리 심각한 죄악이라도 교회가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없다.”( Ibid., Para. 982)

이러한 말보다 더 교만한 말을 생각해 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나는 모든 사제들에게 낙태의 죄를 지은 자들의 죄를 용서할 재량권을 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교황 프란체스코가 그의 사제들에게 (인간 피조물에게) “낙태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재량권”을 허락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이는 죄를 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의 유일한 특권인데 죽어 마땅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서 선언하신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 가운데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그들의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함받는다고 확증한다. 이때 대명사 ‘나’가 주만이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되고 있다.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은혜에 의해 죄악은 사함을 받게 된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구원도 부여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그렇다면 카톨릭의 고해 성사는 영혼을 속이는 거짓이다! 카톨릭 제도 내에서 고해 성사 및 매우 가까운 접촉으로 인한 추문들은 도에 지나칠만큼 끔찍한 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기록된 증거를 알게 된 자는 깜짝 놀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프란체스코는 그의 2015년 8월의 법령이 보여주듯이 고해 성사의 전통적인 교황의 신조를 유지하고 있다. 카톨릭 교도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전달함으로서 그들이 주 예수께 나아와 주의 소유가 되는 기쁨과 자유를 알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은 고통 가운데 신음해야 하며 우리의 바람은 커져야 한다. 우리는 주께서 친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고 선포하신 것처럼 외쳐야 한다.

본성에 대한 주의 시험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시험을 알려주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

교황 프란체스코와 그의 로마 교회는 신학적으로 이단이며, 그들의 윤리 신학은 끔찍한 부패로 이끈다. 바티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가이지만 (108 에이커이다) 정치적인 책략에 있어서는 가장 거대한 국가들 중에 하나이다. 이는 액튼 경의 말에 따르면 “십자가 뒤에 마귀가 숨어 있는 것”과 같다(Acton, Correspondence, 55; as quoted in Himmelfarb, Lord Acton, p. 151).

교황 프란체스코에 대해 기록된 문서로부터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은 교황 제도의 특징과 그 운영 방식이다. 성경에 언급된 “불법의 비밀”은 무신론자들, 창녀들, 술꾼 들과 같은 그러한 악한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 종교의 악에 대한 것이다.( Matthew 7:15; 24:24-25; II Thessalonians 2:3-12; I Timothy 4:1-2; Acts 20:29; II Peter 2:1).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의 백성과 교회의 주인이시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참으로 이 세상의 빛이시다. 하지만 “광명의 천사로 변장한” 마귀가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으며 그는 그의 제도와 거짓 선생들을 갖고 있다.( Revelation 2:9; 2 Peter 2:1)

우리는 교황 프란체스코의 교훈은 구원은 물리적인 성례를 행함으로 얻어낼 수 있다고 가르치는 로마 교회의 교리와 같은 것을 보았다. 영생을 얻기 위해 물리적인 것들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은 역사 가운데서 사탄의 첫번째 거짓말이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사탄은 하와에게 유익을 부여할 수 있는 효력적인 수단으로서 열매를 제시하였다. 그녀는 물리적인 물건 안에 고유한 유용함이 있어서 그녀의 눈을 선과 악의 지식을 향해 열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교황 프란체스코와 로마 교회는 칠성례가 성령의 은혜를 얻기 위한 고유한 수단이라고 제시한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그의 위선을 통해 물리적인 성례가 거룩과 구원을 위한 효력적인 요인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접붙임을 받고 우리는 새생명의 선물을 그로부터 자유롭게 받았다”라고 말하였다(www.missionsandiego.org/pope-francis-bear-the-fruits-of-membership-in-christ-and-the-church-regina-caeli-messsage-may-3-2015/ (Bolding is not in the original.) 그는 “나는 모든 사제들에게 낙태의 죄를 지은 자들의 낙태 죄를 사할 수 있는 재량권을 준다”고 언급하였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그가 정확하게 로마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의 주의깊은 점검에 따른 모든 중한 죄악들은 반드시 고해 성사를 통해 고백되어져야 한다. 심각한 죄에 대한 고백은 죄사함을 얻기 위한 유일한 일반적인 방법이다.”( Catechism, Para. 1456)

이 교리 내용은 영적으로 매우 끔찍한 신성 모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과 존귀가 교황 프란체스코에게 드려지고 있다. 온 세상이 그의 매력과 정책과 성공에 감동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이 세상의 어둠과 부패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교황 프란체스코의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은 미사와 성례, 선행, 공로, 성자들 및 마리아 숭배를 통하는 멀고먼 여행을 한다. 모든 사람들은 성례에 참석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다 행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연옥’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보내어져서 불로 고통을 당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은 심각한 시대이다. 주 하나님과 성경의 진리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이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을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이미 비진리와 타협한 자들로부터 분리될 것을 명령 받았다. 복음을 전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명령이 그리스도인들로 불리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졌다. 주의 기록된 말씀에 기초한 주의 복음을 붙드는 일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우리 모두 앞에 놓여있다! 주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다른 그리스도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셨다. 사도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을 경고하였고, 사도 바울은 양 떼 안에 들어온 ‘늑대들’에 대해 경고하였다. 배도에 대한 경고는 과거 베드로 및 바울 등의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 2015년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결론

 

미사와 성례와 선행과 누적된 공로, 마리아와 성자 숭배를 통한 자기 구원은 전능하신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쓰레기더미일 뿐이다. 이러한 자기 구원의 행위는 성경을 통해 주시는 성령의 확신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행위들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주는 유익은 그 말씀이 흑암과 빛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피할 틈을 주지 않는데 있다. 하지만 교황 프란체스코의 교회는 종교와 도덕과 정치와 교육을 조정하려고 시도한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프란체스코의 로마 교회는 기록된 말씀을 통한 성령의 확증하는 능력과 무관하다. 단지 도덕적인 질문들에 대한 주교와 사제들과 교황 자신의 선언일 뿐이며, 그들이 믿는 바를 선포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도덕적인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강력하며 분명한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가 참으로 우리 죄에 대해 애통하도록 이끌림을 받고 우리 자신의 부패의 심각성에 대해 신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우리의 절망적인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바라며 주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감동하신다. 주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집중하고 그곳에서 마치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의 행함이며 또한 그의 백성을 위한 가장 유익한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희생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성령께서 선포하셨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그리스도 예수님의 희생은 대속적이다. 즉, 주께서는 그를 믿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을 위해 율법을 만족시키셨다. 주의 대속은 완전하기 때문에 주의 희생만으로 그들의 형량을 다 제거하였다. 자기 백성을 위한 대속물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들의 법적인 책임을 감당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주 하나님께서는 참된 신자들의 아버지가 되시기로 약속하심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딸들이 되었다. 이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다. 이러한 특권을 지녀야 할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님과 영생을 취하는 대신에 그들을 구원할 수 없는 경건의 모양을 취하는 것은 얼마나 배은망덕한 것인가!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다. 이는 그들이 주의 보혈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으로 자신의 사악함과 구원의 필요를 인정하는 자들에게

죄와 의와 심판을 알게 하신다. 반면, 미국 및 이 세상의 여러 다른 나라에서 연설을 한 교황 프란체스코의 경우 그는 로마 교회의 부패에 대해 언급해야 타당할 것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의도한 바는 사도 바울이 의도한 바와 같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만 자유와 영생이 있다! 그리스도만을 믿으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만일 주께서 그의 주권적인 은혜로 당신의 마음을 만지셨다면, 아래 이멜로 연락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ichardmbennett@yahoo.com. 

 

베뢰아 등불, 리차드 베네트

 

사이트: http://www.bereanbeacon.org

 

전체에 대해 아무런 변화없이 복사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또한 전체를 인터넷에 실는 것도 허락합니다.

 

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

교황 프란체스코는 ‘거룩한 아버지’의 신분으로 2015년 9월에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카톨릭 뉴스 매체인 ‘제니트’는 통상적으로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로 부른다. 사실, 대부분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거룩한 아버지’라는 용어는 언제나 교황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는 “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거룩한 아버지와 맺는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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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교황 프란체스코의 신비감과 그를 향한 칭송 및 영웅 숭배 가운데 그의 특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그 특징은 그의 예수회 영성 수련입니다예수회 영성 수련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교황 프란체스코의 시스템입니다그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예수회 영성 수련을 철저하게 수련하였습니다우리는 언론과 수많은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자들이 교황 프란체스코에게 아첨하는 상황에서 성경의 진리에 따라 그의 정체를 분별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자 합니다이 글을 읽는 분들은 친구와 가족들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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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가 영적인 중개자로서 그의 지정학적인 계획을 펼쳐 나가다 (리차드 베네트, 로버트 니콜슨)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적인 정치 상황이 더욱 불안하여지고 있다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빼앗았다중동은 계속 투쟁 가운데 있다분명한 것은 세계 권력의 축이 움직이고 있으며 유엔(UN)의 무능은 교황 프란체스코가 그의 지정학적인 계획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따라서 프란체스코는 평화옹호자의 가면을 쓰고 여러 분야에서 교황의 지배를 위한 터를 마련하고 있다최근에 그는 1964년에 있었던 교황 바울 6세의 이스라엘 방문 5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옹호자의 행보를 하였다우리는 교황 프란체스코가 2014년 5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사건을 보면서 이러한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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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세계적인 정치 상황이 더욱 불안하여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적인 정치 상황이 더욱 불안하여지고 있다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빼앗았다중동은 계속 투쟁 가운데 있다분명한 것은 세계 권력의 축이 움직이고 있으며 유엔(UN)의 무능은 교황 프란체스코가 그의 지정학적인 계획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따라서 프란체스코는 평화옹호자의 가면을 쓰고 여러 분야에서 교황의 지배를 위한 터를 마련하고 있다최근에 그는 1964년에 있었던 교황 바울 6세의 이스라엘 방문 5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옹호자의 행보를 하였다우리는 교황 프란체스코가 2014년 5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사건을 보면서 이러한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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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

교황 프란체스코는 ‘거룩한 아버지’의 신분으로 2015년 9월에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카톨릭 뉴스 매체인 ‘제니트’는 통상적으로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로 부른다. 사실, 대부분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거룩한 아버지’라는 용어는 언제나 교황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는 “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거룩한 아버지와 맺는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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